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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태 회장 한겨레 인터뷰기사 안내
등록일 2011.03.22








중국한국상회 박근태 회장님은 “중국사업 경영철학과 노하우”를 중심으로 최근 <한겨레>신문사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동 내용을 참고로 안내하오니 업무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한겨레 2011.3.21)


제목 : “중국 경제 업그레이드…싼 노동력 기대 말라”


기사위치 :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china/468957.html


[한겨레가 만난 사람] 박근태 중국한상 회장


신입사원 시절, 그의 꿈도 동료들의 꿈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지사에서 폼나게 일해보는 것. 여러번 미국 근무를 지원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1984년, 홍콩지사로 발령이 난 그는 수교도 안 한 공산국가 중국과 거래하는 낯선 일을 맡게 됐다.

중국의 속살, 중국인들의 속내를 꿰뚫고 있는 최고의 중국통으로 꼽히는 박근태 중국한국상회 회장(CJ 중국본사 대표)의 27년 중국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처음 홍콩에 갈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중국에서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연이 필연이 되고, 운명이 됐다.”

1989년까지 5년 동안 대우 홍콩지사의 철강부 과장으로 중국과 거래하면서 그는 중국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봤다. “홍콩은 무역거점이자 글로벌 도시지만 결국 자원이나 자본은 대륙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 2년 동안 영어만 쓰고 중국인들과는 통역을 통해서만 대화하던 그는 중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출근 전, 퇴근 뒤 시간을 쪼개 하루 3시간씩 중국어에 매달렸고 “6개월 뒤 중국인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중국어로 입을 떼고 중국에 마음을 연 뒤 대륙을 누비며 27년간 그가 쌓아온 중국 인맥은 1만여명에 이른다. 오랜 인연을 맺어온 중국 펑유(朋友•친구) 가운데 이제는 지방정부의 서기나 성장, 국영기업 간부 등 중국을 이끄는 리더 자리에 오른 이도 많다.

요즘 그는 중국에 진출한 7000여 한국 기업들의 대표이자 씨제이 중국본사의 지휘자로서 중국 구석구석의 현장을 누비느라 쉴 틈이 없다. 그의 일정표는 일주일에 5~7곳의 도시를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대장정의 일정으로 빽빽하다. 그만큼 한국과 중국에 대해 할 말도 많은 그다.

인터뷰•사진/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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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중국에 발을 디뎠을 때 첫인상은 어땠습니까?

“1988년이었는데 한-중 수교 전이라 홍콩에 있던 중국 기업 현지법인을 통해 어렵게 비자를 받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하이커우, 주하이, 선전 등을 15박16일 동안 돌아봤습니다. 상하이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해 14시간을 기다려 간신히 광저우에 도착한 뒤 다음 행선지로 가려고 공항에 가니 난리가 났죠. 외국인은 재확인 도장이란 걸 받아와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절대로 비행기에 태울 수 없다는 거예요. 한국인이 당시 중국에 그런 제도가 있는지 알 리가 없었죠. 사정사정해서 탑승권은 받았는데 체크인 카운터에 갔더니 도장이 없으니 절대 안 된다며 탑승권을 찢어버리는 거예요. 여직원에게 계속 싹싹 빌었는데 퇴근하러 가버리는 겁니다.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퇴근하려는 그 사람 자전거를 붙잡고 서툰 중국어로 “나는 한국인이다, 도와달라”는 두마디만 계속 되풀이했죠. 결국 직원이 전화를 걸어 표를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20여년 전 모든 것이 낯설고 달랐던 중국과의 첫 만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래도 당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서우두철강, 바오산제철 등 중국 철강업계의 주요 인사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지금까지도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중국 질적성장 단계 돌입…투자우대 등 사라져
한국기업도 사회공헌•직원복지 강화 전략 필요
“변화상 폄하하기 전에 실사구시적 태도로 봐야”

-27년간 중국을 관찰하면서 변화를 실감하는 순간이 있었습니까?

“운좋게 중국 개혁개방 이후의 변화들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한-중 수교 직후 1993년 베이징에 처음 부임했을 때 호텔 몇곳을 제외하면 베이징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건물이 거의 없었어요. 중심가에 있던 제 사무실 앞으로 소달구지들이 지나다녔죠. 지금은 어딜 가나 현대식 고층건물과 대형 쇼핑몰이 즐비합니다. 상하이 푸둥 개발, 홍콩 반환, 베이징올림픽, 상하이엑스포까지 역사의 현장들에 다 있었는데, 특히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전율을 느꼈어요. 중국이 모든 역량을 집중해 세계가 중국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도록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대표님의 폭넓은 중국 인맥에 감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비결은 무엇입니까?

“명함을 보관하고 있는 중국 친구는 1만명 정도, 핵심 친구는 1000명 정도예요. 1980, 1990년대에 만난 라오펑유들 가운데는 중국의 장관이나 차관급이 된 사람들도 여럿입니다. 중국 친구가 조언해준 ‘먼저 친구가 되고, 장사는 천천히 하라’는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사람들을 대합니다. 오랜 친구가 될 사람이라고 판단하면 나를 어떻게 각인시킬지 연구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죠. 부탁이나 스치는 말로 이야기한 것도 반드시 지켜서 작은 감동을 주고, 못 들어주더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정성을 보입니다.”

-중국인들은 실리만 따진다고들 하는데 대표님이 느낀 중국 친구들은 어떻습니까?

“대우차이나 상하이지사장으로 일할 때 대우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중국 언론에 ‘대우그룹이 파산했다’는 보도가 대서특필되고 있는데 상하이 시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중국 학자 친구가 달려왔어요. 나를 걱정하면서, 중국 언론에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며 언론사 60곳에 직접 연락해 기자회견을 마련해 줬습니다. ‘대우그룹이 파산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계열사별로 독립경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도록 코치도 해줬고요. 1980년대 홍콩에 근무할 때부터 알게 된 중국 철강기업의 한 친구는 제가 상하이로 부임하자마자 힘을 내라고 2만t의 철강 주문을 해줬습니다. 당시 500만~600만달러나 되는 대규모 거래죠.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준 중국 친구들이 많습니다.”

지인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안파이 박’이다. 안파이는 중국어로 안배하다, 준비하다, 주선하다 등의 뜻인데, 남의 일을 세심하게 챙기고 어려운 일이라도 유연한 해법을 찾아주는 그에 대한 지인들의 감탄을 담은 표현이다. ‘박근태에게 부탁하면 뭐든지 제대로 해결된다’는 정도의 의미다. 진심과 정성을 다하는 그의 인간관계는 유명하다. 그는 “5남2녀의 늦둥이 막내로 어릴 때부터 가족들의 ‘심부름센터’처럼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남의 부탁을 성심성의껏 도와주는 것이 몸에 배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보는 시선에서 변화를 느끼십니까?

“19년 전 수교 당시와 현재 중국인들이 한국을 보는 눈은 매우 달라졌죠. 초기에는 한국이 배울 게 많은 나라라고 우러러봤지만,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이 핵심 부품은 미국•일본•유럽에서 사오는, 중국과 큰 차이가 없는 국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친한 중국 친구들이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때는 ‘한국인들이 중국을 너무 이해 못한다’ ‘중국 문화나 상관습을 너무 무시한다’ ‘중국인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아쉬워합니다. 중국은 더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알게 됐고 더 많은 부를 가지게 됐는데, 한국은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죠.”

달구지 다니던 베이징, 10여년만에 올림픽 전율
한국정부 중국대접 소홀해 한중관계 ‘걸림돌’
“중국 친구들, 한국이 무시한다며 속내 털어놔”

-최근 한-중 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중 관계가 중요하다고 다들 말은 하는데 노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한-미 관계가 경색되면 해결하려고 모두 나서서 전방위적으로 적극 노력하는 반면,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원한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관계 구축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민간이나 기업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몐쯔(面子•체면)를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정부의 공식적인 태도나 입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오만해졌다는 불만과 ‘중국위협론’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해는 불신에서 나오고 불신은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중국을 폄하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결합한 독자적 발전모델을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국이 외부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외부로 비치는 모습에 독단적이고 모순된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중국을 무시하기 전에 이해하려 한다면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구하는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고 싱크탱크를 구축해야 하고, 양국 중•고등학생, 젊은이들 사이의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겉으로는 부강해졌지만 많은 내부 문제들 때문에 좌초할 것이라는 예측도 계속 나옵니다.

“중국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는 게 아니죠. 부실채권 문제도 심각하고 국영기업 문제, 빈부격차, 도농간 격차도 큽니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나면 중국의 버블이 붕괴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식으로 중국의 발전을 폄하하는 냉소적인 예측은 계속 나왔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계속 앞으로 나갔죠. 중국의 문제를 보는 동시에 변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없는 사회나 국가는 없지만, 문제를 개선하고 해결하려는 노력과 능력이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중국 정부나 발전개혁위원회, 사회과학원 등이 계속 중국 사회를 연구하고 대책을 세우고 5년 단위의 계획을 내놓습니다. 올해도 12.5 계획을 통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빈부, 노농간 격차를 해결하겠다고 합니다.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의견을 조율해 결정하면 정부가 강하게 집행하고, 미래의 지도자를 20~30년 동안 키우고, 부패방지 등을 위한 여러 제도를 도입하면서 중국이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중국은 ‘실사구시’를 굉장히 중시합니다. 우리도 중국을 볼 때 실사구시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중국을 욕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우의 중국 사업에서 잔뼈가 굵은 박 대표는 2006년 씨제이가 중국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기로 하면서 씨제이중국본사 대표직을 맡았다.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대우에서는 철강, 자동차 등 굵직굵직한 사업만 하던 그가 두부, 빵, 조미료, 사료, 영화관, 식당까지 중국인들의 일상을 파고드는 새로운 과제를 시작한 것이다. 요즘 전세계 기업들의 화두인 중국 내수시장에 일찌감치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에 필요한 전략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포천 500대 기업의 90% 이상이 다 중국에 들어와 세계 다국적기업과 중국 토종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곳이 중국 시장입니다. 중국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최적의 시장을 찾아 유통망을 구축하는 현지화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중국 시장에 거는 기대가 상대적으로 큰 것 같아 아쉽습니다. 13억 거대시장으로 막연하게 추측만 하고 나선다면 백전백패입니다. 우리도 중국 시장에 다시다를 처음 선보이면서 ‘한국 교민도 많고 조선족 인구도 많으니 한국과 똑같은 소고기 다시다를 내놔도 어느 정도는 시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가 큰 낭패를 봤습니다. 90% 이상이 닭고기 조미료를 쓰는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닭고기 다시다를 개발하고서야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대만의 주요 식품기업인 통일그룹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대만 맛을 고집한 라면을 내놨다가 낭패를 봤지만, 대만에서 이보다 훨씬 작은 기업인 캉스푸나 왕왕은 중국 시장을 철저히 연구해 중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들을 내놔 중국의 대표적 식품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 기업들 사이에 중국에서 사업하기 힘들어졌다는 불만이 많은데, 대책은 무엇입니까?

“한국 기업들은 중국 사업에서 경쟁력이 무엇인지 자문해야 합니다. 중국 사업 환경이 예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졌고, 무엇을 걸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 점검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위기에 살아남으려면 가능한 부분에서 최선의 경쟁력을 갖춰야 하고, 중국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여야 합니다. 중국이 12.5 계획을 통해 ‘질적 성장’을 목표로 내세웠고, 한국 기업들도 전략을 바꿔야 합니다. 중국이 경제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오염산업을 퇴출시키고 노동계약법도 철저해졌고 외국 기업에 대한 투자 우대도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생존전략을 짜야 합니다. 과거에는 싼 노동력을 이용해 허술한 인력관리 체계로도 중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회공헌, 직원 복지, 환경보호 등에서 선진국에 못지않은 접근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머지않아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중국 경제와 함께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박 대표는 중국내 극장사업 확대, 한-중 합작 영화 제작, 가수 비의 중국 공연, 뮤지컬 <맘마미아> 중국어판 공연 등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문화시장에 한국 문화산업이 뿌리 내리게 하는 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는 “한류 열풍이 잦아들었다기보다는 중국인들의 일상적 문화로 흡수됐다”며 “지금은 한류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중국인들의 일상에 알게 모르게 스며든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면서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가능성을 낙관하면서도,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변화에 맞춰 빠르게 현지화해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씨제이도 5~10년 안에 중국 시장에서 한국보다 2배 이상의 수익을 내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2~3년이 한국 기업들에는 중요한 기회이고, 이때 중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면 문턱이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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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태 회장은

27년간 대륙누빈 ‘중국통’…장차관급 등 인맥 1천명

박근태 대표는 1984년 대우 홍콩지사 철강부 과장으로 시작해 대우인터내셔널의 광저우지사장, 상하이지사장, 대우차이나 대표를 거쳐 2006년 1월부터 씨제이(CJ) 중국본사 대표를 맡고 있다. 2010년부터 중국한국상회 회장으로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을 지원하고 대표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을 중국과 함께 보낸 그는 드넓은 중국 땅 구석구석을 누비며 현장경영을 강조한다. 그의 트렁크는 항상 빵과 다시다, 식용유 등 자사 상품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열정을 다해 제품을 설명하고 건넨다. 대기업 최고경영자지만 그는 레스토랑 주방장들에게 직접 자사 제품을 소개하며 메뉴를 조언하기도 한다. 중국을 파고드는 성실함과 치열함에 중국인들이 감탄하는 이유다.

박 대표는 중국본사 6000여 직원들의 이름에 모두 ‘님’자를 붙여 부른다.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고,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면서 직원 각자가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리더십을 강조한다.